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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2016년 대선을 복기하고, 트럼프를 꺾을 적임자를 자처하며 경선에 뛰어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 시장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방송에서 4년 전 트럼프가 당선된 뒤 많은 사람이 ‘충격’에 빠져있던 때 밴더빌트대학교의 래리 바텔스(Larry Bartels) 교수는 이번 선거가 “대단히 평범한 선거였고, 결과도 예상 가능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고 말씀드렸죠. 대선 이틀 뒤인 2016년 11월 10일 워싱턴포스트에 올라왔던 그 칼럼을 번역해 소개합니다.
오늘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리는 토론 이후 녹음할 7화에서는 버니 샌더스 대세론이 어디까지 갈지를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선거에서 승리했다. 정치학자들에게는 이제 한동안 자세히 들여다보고 요인을 분석하고 설명해야 할 거리가 생겼다. 일단 선거 직후 나오는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불안한 경제, 문화적으로 느끼는 소외감, 포퓰리즘, 인종 간 차별과 역차별에 대한 분노, 여성 비하와 성별 갈등, 강력한 지도자로 포장한 권위주의적인 모습 등이 트럼프의 승리에 기여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좀 더 넓게 보면, 한두 가지 특정 요인 덕분에 트럼프가 승리했다고 결론을 내려선 안 된다. 그런 단정적인 결론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번 선거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선거 과정에서는 전례 없는 일이 유독 많이 일어났고, 전통적인 정치인의 범주에 들기 어려운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선거 결과 자체만 놓고 보면 이번 선거는 대단히 평범한, 예측 가능한 대로 결과가 나온 선거였다. 역대 선거를 통해 유추해낼 수 있었던 양대 정당 사이의 선거 승패, 집권 패턴만 분석해봐도 그렇다.
존 사이즈(John Sides) 교수가 이미 잘 정리했지만, 이번 선거는 이른바 ‘펀더멘털(fundamental)’, 즉 기본적인 요건을 바탕으로 한 예측대로 결과가 나온 평범한 선거였다. 사실 이번 대선 기간 내내 워낙 독특한 후보가 나오기도 했거니와 전례 없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이번 선거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필자도 트럼프 후보의 관행을 따르지 않는 파격적인 유세를 보며 이번에는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국, 선거 결과는 어느 당이 집권 여당인지, 선거를 치른 해의 경제성장률은 어느 정도였는지 등 펀더멘털이 좌우한 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주류 언론의 정치 평론가들이 보기에, 또 언론이 예의 수준 높은 민주주의 지도자를 가늠하는 잣대를 들이댔을 때 도널드 트럼프는 분명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이 없는 인물이었다. 마침 여론조사도 한결같이 트럼프의 열세를 점쳤다. 하지만 일반 유권자들의 표심을 좌우하는 잣대는 아주 달랐다. 이들에게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부족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거짓 없이, 솔직하게 생각한 바를 말하는, “한다면 하는” 추진력 있는 지도자로 보였다.
전체 득표율 말고 주별 개표 결과를 보더라도 지난번 선거와 크게 다르지 않은 패턴이 나타났다. 2012년 공화당 롬니 후보의 득표율과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의 득표율 사이의 상관관계는 0.93으로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번 선거와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 나타난 공통점, 연속성을 과거의 선거들과 비교해보면 특징을 추려낼 수 있다. 필자는 1868년부터 1996년까지 대선 결과를 분석했던 적이 있는데, 과거 선거들과 최근 선거를 구분 짓는 특징이 있다면 최근의 선거가 “정당 지지도가 좀처럼 급변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21세기 들어 확고하게 굳어진 정당 지지도는 19세기 말 이후에는 미국 정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이었다. “정당 지지도의 연속성”이 지난 세 차례 선거 결과를 합산했을 때 더 많은 지지를 받은 정당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라면, 21세기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정당 지지도의 연속성은 매우 높았다. 그에 비해 다른 요인 중에는 정당 지지도 만큼 선거 결과를 좌우할 만한 요인을 찾기 어려웠다.
이렇게 펀더멘털만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던 선거였음에도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미국의 유권자 지형과 정치에 거대한 재정렬(realignment)이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자신 있게 하고 있다.
이미 선거 전에 마이클 린드는 “기존의 정치 질서가 흔들리고 있으며, 미국의 정치 지형과 구도가 새로 짜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나단 하이트는 2016년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정치 지형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분기점으로 규정했다. 세계적인 통합을 지향하는 세계주의자(globalists)와 국가를 우선시하는 국가주의자(natinoalists)가 미국과 유럽의 정치 갈등의 중심축이 될 거라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국수주의 성향의 트럼프에게 승리를 안겨준 미국은 국가주의를 따르는 진영에 속해 2050~2060년 무렵이 되면 대부분 나라가 세계주의를 받아들인 뒤에 소수파의 거두 같은 나라가 될 거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그럴 수도 있다. 지금은 알 수 없다. 2050년이 되어봐야 알 수 있는 내용이고, 실제로 정당 제도와 구도, 지형이 변하는 데도 10년 넘는 세월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당선된 데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 물론 대단히 인상적인 승리이긴 했고, 트럼프라는 인물의 특징을 고려해봤을 때 앞으로도 정말 전례 없는 행보를 이어갈 테지만, 어쨌든 선거 결과는 철저히 과거의 패턴을 따른 선거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는 함께 책을 쓴 크리스토퍼 에이큰 교수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란 기본적으로 동전 던지기와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알 수 없다는, 50:50이라는 말이다. 2012년 선거는 펀더멘털을 토대로 예측했을 때 접전이 예상됐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아슬아슬하게 승리하며 연임에 성공했다. 2016년 선거도 펀더멘털을 토대로 예측했을 때 접전이 예상됐다. 결과는 ‘8년 뒤 정권교체’라는 어드밴티지를 안고 있던 공화당 후보의 신승이었다. 동전 던지기 결과와 다를 바 없는 선거 결과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